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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공간

클래식 List 및 곡 소개(4월 1주)

작성자
안미애
조회
1939
작성일
2015.03.26
『클래식 카페』 곡 소개 3.30(월)
1. SYMPHONIES 4,586/ HERBERT VON KARAJAN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4,5 8. 6번 / 카라얀] (1 Disc)
1) 차이코프스키 차이콥스키는 1840년 5월 7일에 러시아의 외딴 시골 카마 강변 보트킨스크에서 광산 기사인 아버지에게서 태어났다. 그의 일족 중에 음악과 인연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지만, 음이 민감해서 10세 때 이미 작곡을 할 정도였다. 그는 처음에 법률학교에 들어 가서 19세 때 사법성의 관리가 되었다. 그러나 세월과 함께 들어 나는 마음의 괴로움은 그를 음악의 세계로 몰입시켰다.
1863년에 그는 생활이 안정된 관리 생활을 포기하고 음악원에 입학하여 음악을 향한 첫걸음을 내디였다. 이론을 자렌 바에게, 관 현악법을 안톤 루빈시타인에게 배웠다. 음악원에서의 성적은 매 우 우수하여, 그것이 루빈시타인의 눈에 띄어 지우(知)를 얻게 된다. 안톤 루빈시 타인은 이 천재를 감화와 격려로서 지도하였으 며, 차이콥스키는 음악원을 졸업하자마자 모스크바 음악원의 교 수로 임명되었다. 최초의 교향곡이 작곡되어 그의 지위를 확립했 고, 그리고 얼마 후 이상적인 후원자 메크 부인의 도움을 받아 생활이 안정되어 오로지 작곡에 매진할 수가 있었다.
그는 유럽을 편력하고, 미국에 가게 됨으로써 크나큰 명성과 영예를 얻었다. 모스크바 근교의 그가 숨어 살던 집은 러시아를 비롯한 여러 나라 사람들의 많은 동경의 대상이었다. 1893년 여름에 그는 제6번 교향곡인 유명한 「비창 교향곡 이 상연된 뒤 몇 주일이 채 못되어 콜레라 에 걸려서 급사했다. 사람들은 뜻밖의 급사 소식을 듣고 놀라 차이콥스키 자살설을 믿을 정도였다. 그것은, 우선 「비창 교향곡에 넘치는 어두운 그림자가 사람들로 하여금 어떤 종류의 불안을 상상케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차이콥스키의 전기(傳記)를 읽으면 그 속에는 메크 부인과의 관계가 여러 가 지로 나타나는데, 이 메크 부인은 부호의 미망인으로 차이콥스키 예술의 훌륭한 이해자였다. 흥미로운 것은 차이콥스키와 메크 부인은 생전에 전혀 면식이 없었으며, 우연히 만나도 알지 못하고 지나칠 정도였다는 점이다. 차이콥스키도 편지 왕래는 하고 있었지만, 부인을 방문한 적도 없고 또 찾아가려 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그는 부인을 신뢰했고, 부인은 그의 예술을 사 랑하여 그 성장과 결과를 즐긴 것이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2) 곡목 01. Opening Credits - Tchaikovsky: Symphony No.4 02. 1. Andante sostenuto - Moderato con anima - Moderato assai, quasi Andante - Allegro vivo 03. 2. Andantino in modo di canzona 04. 3. Scherzo. Pizzicato ostinato - Allegro 05. 4. Finale (Allegro con fuoco) 06. Opening Credits / Tchaikovsky: Symphony No. 5 07. 1. Andante - Allegro con anima 08. 2. Andante cantabile, con alcuna licenza - Moderato con anima 09. 3. Valse (Allegro moderato) 10. 4. Finale (Andante maestoso - Allegro vivace) 11. Opening Credits / Tchaikovsky: Symphony No.6 12. 1. Adagio - Allegro non troppo 13. 2. Allegro con grazia 14. 3. Allegro molto vivace 15. 4. Finale: Adagio lamentoso - Andante 『클래식 카페 곡 소개 3.31(화)
LEOLARO BERNSTER BIBIER PARA
UNITE
1. 슈만 : 첼로협주곡/R 슈트라우스 : 돈키호테 - 로스트로포비치, 번스타인,
카라얀 1) 슈만 첼로 협주곡 중 굴지의 걸작이다. 독주 첼로에서 울려 퍼 지는 낭만적인 우수, 독주악기와 오케스트라의 섬세한 교 감, 독주 첼로의 뛰어난 기법 전개는 비교할 만한 것이 없 다. 모티브의 연결에 의한 동제는 악곡을 긴장감 있는 중 후한 곡으로 만들어주는가 하면 반면 전체의 대담한 구성 력은 작품을 가볍게 비상하게 한다. "여기에는 낭만성, 비 상, 참신함, 유머가 있으며, 특히 첼로의 성격에 맞는 올림 과 깊은 정감이 가득하다"고 서술한 클라라의 말은 충분히 공감이 간다. 1850년 9월에 당시 활동지였던 드레스덴 떠나 뒤셀도르프에 도착한 슈만 부부는 기대 섞인 열광적인 환영을 받는다. 뒤셀도르프에서의 임무는 시의 관현악 단과 아마추어 합창단을 지휘하는 것. 겨울시즌 10회와 개
LIFE & ART 톨릭교회의 예배에서 한 해에 2~3회의 음악회, 가까운 도시에서 교대로 공동개최하고 있는 음악제를 치루는 것이 다. 9월말에는 쾰른을 방문하여 대성당을 보게 되고, 그 인상이 교향곡 제3번에 반영된 듯하다. 아무튼 슈만의 마 음은 의욕에 가득 찼고, 그 시이게 이 곡을 작곡하게 된다. 지필 악보를 보면 슈만은 협주곡이 라기보다는 콘체르트슈튀크(Konzertstiicky라고 명시해 놓고 있다. 이는 전통적 관점의 협주곡 양식과 결별해 작곡가 카를 베버로부터 비롯한 새로운 장르인 콘체르트슈뒤크와 첼로의 가능 성을 발전시키고 싶어 했음이 분명하다. 그의 다른 협주곡들과 동일하게 이 [첼로 협주곡] 역 시 환상곡풍의 스타일로 구성되어 있으며, 세 악장이 쉼 없이 연주되는 단악장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제 1악장 첫머리오케스트라가 조용히 연주하는 3마디의 화음음형은 악장 전체의 중심 모티브이다. 양끝악장의 주요 주제와 악장을 이어주는 부분에도 사용된다. 짧은 오케스트라 도 입부에 이어 첼로의 독주가 시작되고, 이후 서정적인 멜로디를 따라 오케스트라와 첼로는 긴밀 한 관계를 유지하며 3악장 론도에 이르기까지 독특한 음향과 개성적인 리듬을 만들어간다. 최 근에는 마지막 코다. 전에 등장하는 마지막 반주가 따르는 카덴차를 연주가 자신이 임의로 작 곡한 무반주 카덴차를 등장시키기도 한다. (출처 : 네이버 블로그, 쉼과 음악 그리고 설왕설래) 2) 작품설명 슈만이 작곡한 세 곡의 협주곡 중 가장 유명한 피아노 협주곡과 바이올린 협주곡, 그리고 첼로 협주곡은 대체로 외면적으로 화려한 기교를 부리지 않고 독주부와 관현악부가 일체가 되어 슈 만 특유의 시적이고 상상력 넘치는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첼로 협주 곡 A단조 Op.129는 이러한 특질을 가장 잘 띄고 있는 작품으로서, 독주악기의 존재감을 화려 하게 드러내보이지 않고 관현악 속으로 자연스럽게 몰입시킨 점이 다른 첼로 협주곡들과의 다 른 점이기도 하다. 외향적인 성격보다 내면적인 모습, 그리고 내면으로의 침잠이 아니라 외면 을 향해 용솟음치는 고양감을 그러낸 작품인 만큼 독주자로 하여금 세심하면서도 대범한 연주 기법과 상상력 풍부한 표현력을 요구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클래식 카페』 곡 소개 4.1(수)
OTELLO
1. 베르디 : 오텔로 - 카라얀, 미렐라 프레니, 호세 반 담 1) 베르디 1871년 "아이다"로 '위대한 성공'을 거둔 베르디는 이 작품이 자신의 최후를 장식할 마지막 걸작이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후 대문호 알레산드로 만초니를 추모하며 레퀴엠 (1874)을 작곡하기도 했지만, 이는 오페라가 아니다. 그는 산타가타의 농장에서 조용히 여생을 마무리하고 싶었다. 이때 시인이자 작곡가인 아리고 보이토가 베르디를 방문한다. 그는 세익스 피어의 유명희곡 "오셀로'를 오페라 대본으로 만들어 베르디를 설득하기 시작했고, 부인 주세 피나 스트레포니와 악보출판상 줄리오 리코르디, 그리고 지휘자 프랑코 파치오가 이에 가세했 다. 드디어 거장은 다시 펜을 들었다. 7년간 이어진 길고 긴 작업 끝에 1886년 11월에 전막을 완성했고, 1887 년 2월 5일 프란체스코 타마노 (오델로), 로밀다 판탈레오니 (데스데모나), 빅토 르 모렐(이아고)과 프랑코 파치오의 지휘로 스칼라에서 역사적인 초연을 가졌다. 관객은 열광 했고, 노대가는 감격했다. 2) 작품설명 '고대 그리스의 제의적 비극정신을 회복하는 것이 앞으로의 오페라가 추구해야 할 근본이 념이며, 오페라 역사의 근원이자 궁극적인 목 표'라는 리하르트 바그너의 급진적인 테제는 19세기 오페라 작가들의 고민과 모색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다. 감상적인 아리아와 기계적인 재주들로 가득찬 전래의 관습적 오페라는 음악과 극의 진정한 통합이라는 근대적 (혹은 근원적인 욕구를 제대로 충족시켜줄 수 없었고, 낭만주의라는 시대정신에 걸맞는 ' 예술을 위한 예술'이란 개념과 무한성에의 감 구는 스펙터클한 극적 장면의 결합이 더 이상 오페라의 형식법칙이 될 수 없음을 선언하였 다. 당대의 위대한 오페라 작가인 주세페 베르 디 또한 '음악과 극의 유기적 일치'라는 숙명 적 화두를 앞에 두고 고심을 거듭하였다. 민족 주의에 경도된 그의 창작 제 1기는 선동적 혈 기로 가득찼으며, "리골레토", "트라비아타", " 일 트로바토레" 등의 걸작을 쏟아내던 제 2기 는 낭만적 멜로드라마의 공식에 충실하여, 극 적 대사로 이뤄진 비합리적 격정과 가족간의 반목과 대결, 음모, 이기심 등을 실감나게 표현하였다. "돈 카를로스"부터 시작되는 마지막 제 3기는 '베르디 드라마'를 완성한 시기로, 동시대의 바그너가 추구했던 종합예술작품 (Gesamtkunstwerk)로서의 드라마가 가진 래디컬한 개별 예술언어들 - 즉, 신화차용, 종교적 회 중 (Kultgemeinde)으로서의 청중, 일상과 유리된 특별한 공간으로서의 극장론 등 - 을 받아들 이는 대신, 지금껏 그가 추구해온 '인간적인 감정에 충실한' 휴먼 드라마를 완성하는데 전심전 력을 다하였다. "오델로"는 바로 이 시기를 대표하는 명작이다. 『클래식 카페 곡 소개 4.2(목)
1.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 첫 부분의 피아노 터치가 인상적인 곡이다. 이 부분은 크 렘린의 종소리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데, 그만큼 장중하고 아름답다. 누가 들어도 단번에 러 시아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또한 애수에 찬 감미로운 2악장, 빛나는 3악장도 많은 영화, 드라마, CF에 삽입되어, 이 곡은 처음 듣는 사람에게도 아주 친숙하게 느껴진다. 라흐마니노프는 작곡가로도 유명하지만, 그 자신이 아주 뛰어난 피아니스트였다. 그는 아주 손 이 크고 테크닉도 뛰어다. 힘과 기교를 겸비한 빼어난 연주를 하였다. 그의 피아노 곡들은 당 연히 직접 연주할 것을 염두에 두고 작곡되었느니, 연주하는데 피아니스트의 엄청난 기량이 필 요하다. 관객들에게는 피아노의 능력을 극대화한 명곡이지만, 수많은 피아니스트들을 절망에 빠뜨리는 난곡들이기도 하다. 현재는 라흐마니노프를 마판증후군 환자로 추정하고 있는데, 이 병은 손가락을 길고 유연하게 만드는 특성이 있다. 그러니 정상적인 사람이 라흐마니노프의 테 크닉을 쉽게 따라 하기란 애당초 어려울 수밖에 없다. 전설적인 바이올리니스트 파가니니도 역 시 마판증후군 환자로 의심된다. 그는 평생 4개의 피아노협주곡을 작곡했는데, 그 중 2번과 3번이 가장 유명하다. 1번은 10대, 후반에 작곡했다가 나중에 전면적으로 수정해서, 실질적으로는 이 2번이 첫 번째 협주곡이라 고 보아도 큰 무리는 없다. 라흐마니노프는 작곡에서 차이콥스키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고 평가 받는다. 실제로 라흐마니노프는 차이콥스키에게 배웠으며 그를 멘토로 삼았다. 차이콥스키가 죽었을 때 그들 [위대한 예술가의 회상]이라는 곡을 쓰기도 했다. 그래서 라흐마니노프의 경향 을 회고적이라고하기도 하고, 그를 낭만파의 마지막 작곡가라고 하기도 한다. 그는 당시의 다 른 작곡가들이 보았을 때는 좀 구닥다리 스타일이었던 것이다. 어쨌던 간에 라흐마니노프는 10대 때부터 작곡을 시작하여 많은 훌륭한 곡을 쓴다. 피아니스 트로의 기량도 뛰어나서 연주자로도 인정받고, 지휘도 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한다. 그런데 라 흐마니노프가 24세 되던 해부터 약 3~4년간 작곡가로 큰 슬럼프를 겪게 된다. 사실상 그 기간 동안 아무 곡도 쓰지 못했다. 그 이유는 1897년에 초연한 교향곡 1번이 무지막지한 악평을 들 어 작곡에 완전히 자신감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개인적인 불행도 겹쳐서 그는 우울증에 빠지고 만다. 2.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펠릭스 멘델스존이 자신의 두 번째 바이올린 협주곡을 완성하게 된 1844년 여름에는 그 자신 도 이 작품의 성공을 확신할 수 없었다. 멘델스존은 당시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의 콘서트마스터로 활약하고 있던 페르디난트 다비트의 연주에 영감을 얻어 E단조의 협주곡을 작곡하게 된다. 1838년부터 이 작품의 작곡을 시작했지만 완성 (1844) 까지 무려 6년의 시간이 소요될 만큼 심혈을 기울여 작곡했다. 제1악장 (Allegro molto appassionato) 우아하게 시작되는 서주는 멘델스존 특유의 것이다. 바람결에 나부끼는 코스모스의 느낌처럼 ! 은은하게 피어오르는 멜로디는 그 자체로 매혹되는 선을이다. 현악기의 화음과 함께 독주 바이 올린이 주제를 연주하는데 이 부분에서 안개에 휩싸인 듯한 분위기의 연출은 필수적이다. 오보 에와 바이올린의 화음, 그리고 클라리넷과 플루트의 앙상블이 바이올린의 주제를 이어받아 부 서질 듯 말 듯한 여운을 남기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다. 독주 바이올린이 아르페지오와 목관 악기들의 연이은 주제와 코다의 순간적인 폭발은 기교도 기교지만 리듬을 자연스럽게 타는 것 에 주안점을 두어야 한다. 사실 1악장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살려내지 못한다면 전체의 핵심적 인 모티프를 잃어버리기 마련이다. 제2악장 (Andante allegro non troppo)
명상적인 선율은 잔잔한 호수의 물결처럼 전개되는데, 선율의 투명함은 이 악장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며, 따라서 모든 것을 초월한 듯한 느낌을 만들어야 한다. 수도원에서 기도하는 신부의 손 끝에 비친 아침 햇살 같은 투명함 말이다. 유려한 멜로디의 흐름은 1악장이나 3악장에서도 중요하지만, 2악장의 수줍은 듯한 미소를 표현하는 데 있어 선을 감각은 대단히 중요하다. 우아 함의 경지란 바로 이런 것을 두고 말하는 것일 텐데, 오케스트라의 은근한 반주 위에서 독주 바 이올린은 세속의 경계에서 노래한다.
제3악장(Allegro non troppo - Allegro molto vivace)
리드미컬한 3악장은 기교로 빛나고 있다. 특히 마지막 코다 부분에서 화려하게 폭발하는 테크 닉은 모든 것을 삼킬 듯하다. 오케스트라와 독주 바이올린의 대화는 '콘체르토(Concerto)'의 에 원인 '경쟁하다'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3악장에는 사춘기 소녀의 웃음소리 같은 발랄함과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동시에 느껴진다. 멘델스존은 젊디 젊은 감수성의 바다 위를 미 끄러져 가는 듯한 효과를 창출하면서 테크닉의 화려한 비상을 꿈꾸고 있다. 『클래식 카페』 곡 소개 4.3(금)
1. 베토벤 : 교향곡 3번 '에로이카, 브람스 : 비극적 서곡 쇤베르크 : 산비둘기 의 노래 : 아바도의 마지막 공식 콘서트 실황 (Blu-ray 전용) 1) 베토벤 : 교향곡 3번 '에로이카 작품설명
이 곡은 1804년 봄에 완성 되었다. 신들러의 베토벤 전에 의하면 베토벤은 프랑스 초대 집정관이었던 나폴 레옹에게 바치는 이 곡의 부본을 프랑스 대사관을 통해 파리로 보내려고 하던 차에 나폴레옹이 5월 18일 황제에 즉위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분개해서 그 악보의 표지를 찢어버린 후 악보를 마루바닥에 내동댕이쳤다고 한다. 그 표지에는, Bonaparte Ludwing van Beethoven 이라는 글이 쓰여져 있었다고 한 다.프랑스 혁명은 1789년에 일어났다. 코르시카 섬 태생 의 일개 포병사관이었던 나폴레옹은 1795 년 10월에 의회 군을 지휘, 이 대혁명에 참가하여 반란군을 평정함으로써 일약 최고사령관 자리에 오르고 마침내는 이탈리아 원정 군 사령관이 되어 연전연승을 거두었다. 신출귀몰의 위력 을 떨친 나폴레옹이야말로 베토벤의 눈에는 자유정신과 인간 해방의 기수로서 새 시대를 고하는 세기적 영웅으로 보였던 것이다. 게다가 1798 년 2월부터 4월까지 빈 주재 프랑스 대사였던 베르나도트 장군이 베토벤과 개인적 친 분을 가지게 되면서 그는 베토벤의 예술을 높이 평가하게 되고, 베토벤은 그를 통해 영웅 나폴레옹에 대해 더욱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리하여 혁 명의 풍운아, 영웅에게 바치는 교향곡이 탄생된 것이다. 베토벤의 제자였던 리스(Ferdinand Ries, 1784 -1838)가 전하는 바에 의하면 베토벤은 나폴레옹이 즉위했다는 말을 듣고, 그 녀 석도 결국 속물이었군. 그 녀석도 역시 야심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민중의 권리를 짓밟고 그 누구보다도 더 지독한 폭군이 되겠지! 하고 부르짖었다고 한다. 2년이 지나서 출판된 파트 악 보에는 「신포니아 에로이카 라고 이탈리아어로 쓰여져 있었으며 역시 이탈리아어로 된, 『한 사람의 영웅에 대한 추억을 기리기 위해서란 부제가 붙어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이 곡을 나돌레옹 일대기의 표제악으로 생각하고 들을 필요는 없다. 그리고 교향곡 제2번 까지 희미하게 그 모습을 드러냈던 소위 희유성은 이 「제3번 에서는 그 자취를 감추고, 한층 더 진 실한 도덕성이나 윤리성 같은 그 어떤 상한 힘을 이 「제3번은 지니고 있다. 베토벤 자신도 「제9번이 완성되기까지는 이 곡을 최고의 작품으로 꼽았다.
2) 브람스 : 비극적 서곡 작품설명, [비극적 서곡]의 스케치는 1870년 이전에 이루어졌다. 브람스는 클라라의 딸 윤리에 슈만 (1845~1872)에게 남몰래 연정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1869년 윤리에는 백작에게 시집갔고, 브 람스의 상처는 컸다. 고통스런 그의 마음은 [알토 랩소디]란 명곡을 낳았다. [비극적 서곡의 재 료가 적혀있는 스케치 수첩의 대부분은 [사랑의 노래 Op.52]와 [알토 랩소디]를 위한 스케치가 차지하고 있었다. 서곡의 재료와 [알토 랩소디]가 브람스의 심리적인 면을 반영했으며, 당시 브 람스의 심경은 '사랑과 슬픔' 혹은 '사랑의 슬픔'으로 묘사할 수 있겠다. 1871년에 작곡된 [운명 의 노래에는 알토 랩소디의 영향이 남아있다.
3) 쇤베르크 쇤베르크는 12 음기법 (도데카포니)의 창시자로서, 순음악 예술의 수립에 매진한 선도자이다. 그 는 또한 뛰어난 문하생을 많이 갖고 있는데, 알반 베르크와 안톤 베베론 등 현대음악가들이 대 표적인 그의 제자이다. 유태인으로, 1874년 9월 13일 빈에서 태어났다. 바이올린과 첼로를 배 웠고, 후에 작곡을 찌 몰린스키에게 사사했는데, 그 후 브람스 · 바그너 · 말러 · 리하르트 슈트 라우스의 영향을 받았다. 새로운 음악의 흐름과 함께 후기 낭만파와 인상파를 벗어나 '무조구 성주의( 成主義)'로 들어갔다. 1934년 미국으로 이주하여 캘리포니아에 살면서 작곡에 전 념했으며, 1951년 7월 13일에 로스앤젤리스 근교에서 타계했다.